올해 같은 해는 없었다.
그 누구의 말대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절절하게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의 대통령은 예지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알았을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라는 초유의 상태가 일어날지 어찌 알았을까~???
이런 바이러스 팬데믹 상황에서 나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방법은 그저
방구석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나로 인해 내 가족이 , 내 지인이 번거로워지는 것을 원치 않으니 말이다.
방구석에서 지내자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TV와 친해질 수밖에 없다.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으니 영화 쪽과 예능프로인 미스, 미스터 트롯을 보면서 일 년을
보냈나 보다. 발라드도 좋지만 트롯은 거르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쏙쏙 들어온다.
영화도 계속 같은 영화를 편성하나 보다.
시청했던 영화가 또 나와도 또 시청하게 되는 이상한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ㅎㅎ
새로운 영화를 편성하면 윗분에게 야단맞는지 여간해서는 신작은 안내 보내준다.
열흘 전에 EBS에서 방송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보았다.
예전에 한번 보고 나서 몇 번이나 나온 영화이지만 전체적으로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볼 때마다 또 집중하여 보게 되는 영화로 우리네의 인생을 비춰보게 하는 영화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좋아한다.
1992년 로버트 레드포드가 감독한 영화로, 1920년대의 몬타나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버지 맥클레인과 엄마, 아들인 노만과 폴은 몬타나 강가의 교회에서 낚시를
하면서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형인 노먼이 화자로서 가족들을 설명하며 영화를 이끌어간다.
전통적이며 보수적인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닮은 큰아들 노먼~
형 노먼과 달리 아버지와 사사건건 부딪치며 자유분방한 작은 아들 폴~
하지만 가족들은 자유분방하고 명랑한 폴을 좋아하고, 폴의 다름을 이해한다.
폴은 집안의 중심이며, 화제의 중심으로 폴이 빠진 집안은 재미가 없는 조용한 집안일뿐이다.
잘 나서지 않는 엄마는 작은 아들 폴이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큼 사랑하는지를 표정과
태도로서 보여주고 있다.
성격이 이질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두 형제의 공통점은 낚시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낚시는 이들을 이어주는 중요한 구성이며, 이 영화의 주제를 암묵적으로 나타낸다.
이 영화에서 낚시 장면을 빼면 영화가 추구하는 삶을 표현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낚시 장면에서조차 두 형제의 성격과 경쟁심리가 아주 잘 드러나 있다.
차분하게 한 마리씩 잡는 노먼과 달리 폴은 지는 것이 싫어서 더 큰 송어를 잡기 위해
위험도 불사하는 모험을 감행한다.
6년 동안 시카고에서 대학을 마친 노만과 고향 몬타나의 대학생활을 마친 폴은
헤어져 있는 시간만큼이나 서로 변해있었고, 이질적이었다. 그들만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아버지처럼 보수적인 사고방식의 노만과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가 요구하
는 것보다 먼저 행동하는 자유분방한 삶으로 좌충우돌하는 폴~,
노먼이 몬타나로 돌아온 후로 보이는 폴의 태도에는 형을 무시? 하는 듯한 어조가
드러난다. 백수인 형을 놀리는 듯이 목사님, 교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노먼이 진짜 시카고대의 교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의 폴의 표정은
초조함이 역력했다.
삶에 대한 초조함이라고 해야 하나~
여자 친구마저 인디언 여자라서 출입을 거부당하고, 그로 인해 폭력을 행사하게 되고,
포커도박판에 끼어들면서 빚을 지고 결국 그로 인해 죽임을 당하는 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부자가 몬타나의 흐르는 강물에서 낚시하는 모습도 정말이지 그림이다.
두 형제의 낚시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책을 읽는 아버지의 모습과 적정선에 낚시를 멈추고
아버지의 옆에 앉아 이야기를 하는 노먼과 혼자서 강물에 휩쓸리며 송어낚시를 하는 폴의
모습은 나이 때 별로 보이는 삶의 모습이랄까 이런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부모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
형제간의 알듯 모를 듯 경쟁하는 마음을 조마조마하면서 느꼈다.
폴의 마지막 소식을 전해 들을 때의 계단을 올라가던 아버지와 엄마의 모습~
이해 안 되는 장면이었지만 그 시대의 모습이런가, 아님 목사님 부부의 표현방법이런가~
'그는 아름다웠다'라는 한마디로 폴을 회상하는 아버지 맥클레인
노먼의 아버지(목사)가 임종 전에 한 설교 중에
'우리는 가까운 이를 돕지 못할 수도 있고,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 모를 수도 있다.
주려고 해도 거절당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이런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한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다.'
나도 장성한 두 아들이 있다. 키울 때와 다르게 아들들과 대화의 기회가 많지는 않다.
그렇다 보니 자꾸만 틈이 생기고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이해가 안 된다고 하여 아들들을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개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도 사랑하는 마음은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아버지 맥클레인의 말이 가슴에 절절하게 와 닿는 이유인 것이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다'
우리네 인생도 격랑의 물결을 이겨내고 이제는 흐르는 강물처럼 모든 것을 어우르며
흐르다가 한지점에서 만나보는 잔잔한 삶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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